
자본주의는 문화와 지식을 장악해 자본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으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복잡한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혼란과 무자비한 폭력과 비교하면 사회주의는 가장 합리적. 호율적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핵무기 등 각종 무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모든 부와 재능과 노동력을 다수의 삶을 개선하는 데 투자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를 상상해보라. 물론 이런 상상도 회계하지 못한 사회주의자의 망상이라 비웃음을 받겠지만 말이다.
그럼 물어보자.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선거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이벤트인데 이거 너무 웃기지 않나? 엄청난 선거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특권층 남성과 소수의 여성만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이렇게 뽑은 인간들이 진정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들인가 말이다. 진정 집단적으로 사회를 책임진다는 것은 누구나 사회적 책임에 이해관계가 있고 모든 개인에게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밖'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같은 사람의 작은 투쟁이 어이없고 가소롭게 보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체제 안에서 맴돌고 있는 그들의 시야를 더 크게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완전히 다른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지식인 또는 문예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해 내달리며 경쟁하는, 흡사 야생의 생태계를 방불케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힘 없는 소수자들, 몫 없는 노동자들이 배척되는 것은 물론, 자본과 이런 선거에 의해 뽑힌 인간들에게 살해되어 왔다. 게다가 그와 같은 사회 집단 경계 내외의 폭력이 일상화되어 더 이상 정당성에 대해 묻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육식(자본주의)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부지부식간에 동식물과 같은 절대적 타자들에 대한 폭력에 익숙했고, 동일한 인간 그룹 내에서도 타인이나 소수자들 또는 가난하고 볼품 없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일을 정당화해왔다. 이런 체제에 의문을 품고 그 폭력성을 인지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 노동자의 노동으로 지탱해온 사회에서 공부한 지식인들의 의무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형제같아"
이 말은 자신의 육식성을 거부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식물성 인간으로 변모하고자 한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한 말이다.
영혜의 항거는 자신을 죽여 세상의 나무들처럼 모두가 형제가 되기를 즉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이 되기를 꿈꾸는 배제된 사람들의 절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