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의 협상술, 동맹의 논리 실종, 자유무역 원칙을 무너뜨리는 협상

9일 오전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굴욕적 대미투자 강요·한국 노동자 폭력적 인권유린, 미 트럼프 정부 규탄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사진=민주노총
9일 오전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굴욕적 대미투자 강요·한국 노동자 폭력적 인권유린, 미 트럼프 정부 규탄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사진=민주노총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요구한 조건은 얼핏 '협상'의 탈을 쓴 공갈에 가깝다. 관세를 낮춰주겠다며 제시한 대가가 488조 원, 연간 국가예산의 70%를 넘는 금액이다. 이는 국가적 재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비현실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투자를 빌미로 한 경제적 강탈'에 다름 아니다.

냉정히 말해 미국의 조건은 정상적인 통상 협상이 아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수출을 통해 얻는 수익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다시 '투자'라는 이름으로 헌납하라는 것이다. 예컨대 1320만 원을 벌어오면 3500만 원을 미국에 맞겨야 한다는 식인데, 이 논리가 얼마나 기괴한지는 초등학생 셈법에도 걸러질 수준이다.  

게다가 관세 25%를 유지하더라도 실제 수출 감소액은 0.7%에 그친다고 한다. 사실상 '크게 잃을 게 없다'는 분석이 이미 존재한다. 그렇다면 굴욕적 투자를 감수할 이유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에 맞서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계산에 부합한다.

이 사태에서 더 심각한 점은 미국이 세계무역질서와 자유주의 경제의 근본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TO 체제 이후 '공정한 교역'을 앞세워왔던 나라가 동맹국을 향해 이런 식의 깡패 협박을 한다는 것은 국제적 공신력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동맹이라는 명분은 누더기가 되었고, 전략적 협력이라는 가치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때 미국은 냉전 자유 진영의 기둥으로서 가치 동맹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은 '가치'보다는 '강요'에, '협력'보다는 '편취'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을 한순간에 '현금 인출기'로 취급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뻔하다. 섣부른 타협 대신 차라리 배째라는 태도로 나가야 한다. 미국산 무기 구입, 반도체 공급망 협력, 인프라 투자 등에서 이미 한국은 '호구'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 그런데도 또다시 턱도 없는 조건을 내민다면, 거기에 다음 선택은 없다.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은 통계와 시장 논리를 무기 삼아 버텨야 한다.  

미국은 끝내 자신들의 공급망 탈중국 전략을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협력 관계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굴복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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