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통하다. 안타깝다. 억울하다.
故김용균님의 죽음 앞에 동료들은 이렇게 슬피 울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늘 이렇게 파리목숨이었다. 죽은 노동자만이 억울한 형국이다.
얼마나 더 죽어나가야 노동자들의 안전이 지켜질까. 노동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매일 사선에 선다.
인재(人災)에 의한 산업재해. 사람의 실수로 인한 재해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의 실수로 인해 현장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재해인데, 말이다.
김용균님의 죽음으로 전국의 노동자들은 비통해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 전국의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슴을 울렸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김용균님이 생전에 든 손피켓이다. 소박하고 작은 꿈이지만 이루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24살 청년의 꿈은 그렇게 지고 말았다.
아들의 죽음 앞에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위험하게 일을 시키느냐”며 오열했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는 다를 줄 알았다"고 말한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권에 이 같은 일이 자꾸 반복돼서 일어나는 건 이미 지난 정권의 전철을 밟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문재인 정부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를 방치해놨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현장을 가장 일선에서 살폈어야 했다. 그게 부족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사고가 난 태안화력발전소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이다. 원청이 하청을 관리감독해야 맞지만, 원청인 정부 공기업은 사고 후에도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수년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용광로 작업 중에 노동자가 용광로 안으로 그대로 들어가 현장 즉사 한 적이 있다. 당시 노동자는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한 용광로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이후 현대제절 내 인명사고는 여전하다.
현장 노동자는 업무 중에 사고사를 당하는 게 숙명처럼, 이젠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안전을 보장하라. 더 이상 현장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일을 없게 하라. 정부가 나서서 산업현장 내 안전 점검관리를 철저하게 하라. 음주운전자가 곧 살인자인 것처럼 안전하지 않은 현장 또한 현장 노동자를 죽이는 살인마다. 아주 악독한 연쇄 살인마다. 연쇄 살인마를 잡는데 그 어떤 이유나 변명을 해선 안 된다. 촛불혁명의 문재인 정부는 특히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