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한 권의 책밖에 읽지 않은 사람은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책의 위력(어떤 식으로든 신념을 갖게 하는...)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정복자나 악덕 지배자는 책을 태우거나 책이 저장된 도서관을 없애는 짓을 먼저 했다. 현대의 독재자들은 ‘금서’를 지정해서 책을 못 읽게 했다. 하지만 금서로 지정되면 그 책은 더 많이 유통 되고 더 많이 읽혔다. 그런데도 독재자들은 걸핏하면 특정 책을 못 읽게 했다. 그들도 책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책의 정신(강창래 지음/북바이북 펴냄)’이라는 책이 있다. 10여 년 전 나온 동명의 책(알마 펴냄) 개정판이다. 그 당시 한 출판 잡지(기획회의)에 지은이의 글이 실릴 때마다 정독을 했던 기억. 그때부터 강창래의 독자가 되었다. 지금도 기획회의에 글을 싣고 있다. 꼼꼼히 읽는 건 당연지사.
강창래 선생과는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보았기에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진다. 책을 통해서 그와 교감했기에! 현실에선 그의 부인이 하는 출판사에서 내 책 작업도 했고, ‘책의 정신’ 초판본도 그의 부인 출판사에서 나왔다. 개정판은 외우 한기호 출판평론가가 하는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래저래 인연들이 얽혀 있어 그가 낯설지 않은 듯...
그는 말한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독후감을 끝낼 때다’라고. 전적으로 동의. 나는 ‘모든 책은 독자에게 가서 완성된다’라고 늘 말한다. 책은 저자가 쓰지만 저자의 의도(때론 의도에 반하기도!)는 독자가 느껴야 하기에.
오래 전 그의 글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건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뜻밖에도 포르노소설이거나 연애 소설이었단다. 그 당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성과를 친절하게 서술하여 설득력을 높였다.
계몽사상가들의 ‘위대한 고전’이 혁명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쓴 포르노소설 내지는 연애소설이 인권에 더 눈뜨게 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가령 볼테르의 ‘철학서간’보다는 그가 쓴 음란 외설물인 ‘오를레앙의 처녀’가 더 읽혔고, 백과전서파 디드로의 ’입싼 보석‘들도 인기가 높았다. 루소는 그의 ‘사회계약론’은 읽은 사람이 얼마 안 되지만 연애 소설 ‘신 엘로이즈’는 무려 115쇄를 찍었단다. 이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루소의 책을 보았다는 얘기란다.
이렇듯 ‘책의 정신’엔 책과 얽혀 있는 여러 이야기가 쉽게 서술되어 있다. 강창래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서 글을 쓰는 재능이 있는 성싶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박학다식한 저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서술한 글을 보면서 내 기억의 창고에 ‘쉽게(?)’ 저장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박학다식하지 못하다. 하지만 박학다식한 분들의 글을 내 몸에 새기는 박람강기의 자세는 갖추고 있다. 그러기에 뉴턴의 다음 말을 좋아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바라 볼 수 있었다면, 그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쓰는 저자들은 내게 모두 거인들이다!
어지럽고 정 붙일 곳 없는 세상, 이런 때일수록 책을 보면서 견뎌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