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근식 객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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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강구안 중앙시장 뒤의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동피랑 마을은 한 때는 철거 대상이었다. 통영시는 낙후된 이 마을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동포루를 정점으로 한 공원을 만들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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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지방의제 추진기구인 ‘푸른통영21’을 중심으로 시 당국과 주민들이 대화를 통해 벽화마을로 사업 방향이 바뀌었다. 결국 동포루 주변의 몇 집만 이주하고 다른 집들은 그대로 살려서 벽화마을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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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 동피랑 마을 벽화전을 개최한 이후 2년에 한 번씩 벽화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2년마다 마을의 벽화가 완전히 새롭게 그려지고 있으니 몇 년 전 이 마을 골목길을 걸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의 동피랑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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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마을에는 50여 채의 집에 80가구 200여 명의 주민과 작가들이 살고 있다. 동피랑 마을은 동쪽 벼랑의 허물어져가는 마을이었다가 이제는 하루 3,000여 명이 찾아와 걷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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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벽화를 살피며 언덕길을 걷는 동안 담장 안의 인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문이 열려 있는 집도 없었다. 200여 명의 주민이 어딘가 꼭꼭 숨어 있는 듯했다. 외지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와 발소리만 골목길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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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도 하는 벽화들을 살피며 오르다 보면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한 동포루를 마주한다. 서쪽엔 물론 서포루 언덕이 보이고 북쪽 저 높은 곳엔 북포루가 있으며 그 가운데 세병관이 있다. 저 건너 미륵산까지 통영이 다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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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루에서 내려오며 다시 보니 강구안 전망이 좋은 집들이  카페 영업을 하고 있고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도 보였다. 찾아갔던 날이 평일이었기 때문인지 대부분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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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강구안과 미륵산까지의 전망이 좋은 집이었다. 말이 어딘가 어눌한 청년에게 시원한 식혜를 주문했다. 눈앞의 멋진 풍경과 식혜를 섞어 마시며 한가한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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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주문받았던 청년을 다시 보니 장애가 있는 듯했다. 달포쯤 지나 다시 이곳을 찾아갔는데 앉아 있던 이 청년이 일어나며 ‘할머니가 아파서 오늘은 장사 안 한다’고 한다. 그 때 할머니는 청년의 하늘이고 땅이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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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일정의 통영 여행이 재작년의 일이었으니 아마도 작년에 완전히 새로운 벽화가 선을 보였을 것이다. 3월 중순이 가기 전 통영에 다시 가서 미륵산 얼레지꽃을 만나고 동피랑의 새 벽화도 보아야 하겠다. 재작년의 동피랑을 추억하며 올 봄 통영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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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오근식=1958년에 태어나 철도청 공무원, 인제대학교백병원 그리고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일했다. 2019년 2월 정년퇴직하고 걷는 여행 중이다. 퇴직 첫 해 제주에서 1년 동안 걸었고 다음엔 고창에서 석 달 걸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지가 통영이었다. 현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 킬로미터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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