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레임]
9자 때문에 어떤 방송 프로그램 9주년 축하 안 되고, 파란색도 안 되고, 파도 안 되는 이상한 나라. 가만두고 건들지 않았으면 나 같은 사람은 모를 일인데… 이러다가 1과 9와 파란색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그 족속들은 자기네들이 빨간색을 선점했으니, 빨간색 아닌 색은 모조리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잊고 있었는데 몇 해 전 빨강에 대하여 어떤 지면에 쓴 글이 떠올랐다.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변영로, 「논개」 부분
까까머리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사회과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시 한 수를 읊었다. 변영로 시인의 「논개」였다.
선생님은 지그시 눈을 감고서 「논개」를 끝까지 읊었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선생님의 시 낭송을 들었다.
놀라웠다. 국어 과목도 아니고 사회 과목을 맡으신 선생님이 시를 외우다니! 더더구나 그때까지 교과서에서고 어디에서고 본 적이 없는 시였다. 그 시가 품고 있는 시어에는 뜻밖에도 사춘기 소년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강렬함이 있었다.
그 강렬함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에서부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죽음에 입맞추었네···, 그대의 꽃다운 혼/어이 아니 붉으랴···’ 등으로 이어진 시어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붉음’의 이미지에 힘입어 소년들의 가슴에 전기처럼 짜릿한 느낌을 옮겨주었다.
왜장을 껴안고 진주 촉석루에서 남강에 떨어져 죽은 조선의 여인! 그 여인은 분명 시인이 읊은 대로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으로 ‘석류 속 같은 입술’을 하고 있었으며, 그 여인의 ‘꽃다운 혼은 아니 붉을’ 수 없었을 터.
내게 있어서 붉은색, 혹은 빨간색은 그래서 여인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여인의 마음은 물론 단심(丹心)이다. 단심은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마음이니 어이 아니 붉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단심은 곧 적심(赤心)이니, 적심은 티끌만큼도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을 이른다. 이때의 붉음(赤)은 벌거벗음이요, 아무것도 없으니, 그래서 곧 거짓도 없다. 이처럼 붉음 내지 빨강은 깊고 그윽함을 이른다. 그러니 정성스럽고 참됨을 뜻한다. 따라서 시인이 논개를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의 이미지로 떠올린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

논개뿐만 아니라 대다수 조선 여인의 마음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마음은 곧 조선의 여인들이 어릴 때 입었던 색동옷에도 나타난다. 색동옷은 빨강·노랑·파랑·초록 등의 색깔이 알록달록한 무늬로 되어 있는 옷이다.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고 일컬어지는 한민족이 아이들에게 명절날이나 돌 같은 즐거운 날에 색동옷을 입힌 깊은 뜻은 오늘날에 새겨 봐도 대단한 의상 철학이다.
기본적으로 색동옷에 들어간 색깔은 무채색이 아니고 유채색이다. 유채색 옷은 삿되어 나쁜 기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특히 치마는 빨간색이 큰 면적을 이룬다. 이는 밝게 자라라는 의미였다. 물론 색동옷이 아닌 치마저고리에도 빨간색이 많이 쓰였다.
우리 조상들은 빨간색을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잡귀나 악귀를 쫓는 데에도 유감없이 빨간색을 썼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금줄에 매다는 고추는 반드시 붉은 고추여야 했다. 이건 고추가 사내아이의 성기를 상징하기도 했지만, 잘 익은 고추처럼 되라는 마음이 들어 있기도 했다. 잘 익은 고추는 물론 빨간색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많이 쓴 부적을 보면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다. 부적이란 무엇인가? 온갖 흉사를 예방해 주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 달라는 바람을 담은 것 아닌가. 빨간색은 바로 그러한 바람을 담는 데 쓰인 색이다.
빨간색이 그런 데에 쓰인 까닭은 우선 그 색이 가지고 있는 두드러진 가시성 때문이리라. 빨간색은 다른 색에 비해 눈에 잘 띈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술에 있어서 마귀가 빨리 알아볼 수 있는 색으로 상징성을 지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는 이유도 팥죽이 붉기 때문에 잡귀가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비상등이나 자동차의 제동 표시등이 빨간색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눈에 잘 띄는 점 때문이란다. 이게 차츰 몇 가지 상징을 더 얻게 되어 금지를 뜻하는 것은 대부분 빨간색으로 표시하게 되었다. 옛날의 주술적 뜻과도 얼추 들어맞는다.
여성들이 입술에 바르는 빨간 연지는 잡귀를 쫓기 위해 입술에 빨간 물질을 바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빨간 흙을 발랐고, 그다음엔 나무 열매나 꽃잎 등에서 빨간 즙을 내 발랐으며, 차츰 화장술이 발달하면서 연지가 되었단다.
동양에선 단순호치(丹脣皓齒)라 하여 붉은 입술과 하얀 이를 가진 여성을 미인으로 더 쳐주었으니 여성들은 더 맹렬하게 입술을 빨갛게 칠하기 시작했을 터. 빨간 입술에 하얀 이! 옛사람들의 관능이 어떠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입술 화장은 잡귀를 쫓는 데서부터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남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또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 한다.
접근 금지를 위해 바르기 시작했는데, 거꾸로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걸로 바뀌었다니! 그러다 보니 요즘의 입술연지 색은 빨간색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검은색까지 나온 걸 보면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빨간색이 내는 효과는 금지와 매력의 측면에만 있지 않다. 서구에서 빨간색은 투지와 정열의 상징이다. 스포츠카의 색깔은 원색인 빨간색 계통이 많다. 또 운동선수의 선수 복에 빨간색이 많이 쓰이기도 하고, 운동선수의 휴게실 벽 색깔도 빨간색이 많다. 빨간색 옷은 시각적으로 단단하고 강한 느낌이 들어 상대 선수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또 빨간색은 차분한 느낌을 주는 푸른 계통의 색과는 달리 흥분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운동선수가 경기 중 잠깐 쉬는 휴게실 같은 곳의 벽이나 바닥을 빨간색 계통으로 칠해두면 선수는 쉬는 시간 동안에도 전의를 잃지 않고 투지를 불태운다고 한다. 좀 살벌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그랬을까? ‘붉은 악마’라 불린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의 응원 복 색깔은 붉은색이다.
빨간색이 차분함보다는 들뜨는 기분을 주는 색이라는 점에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백화점 같은 데서 매장의 바닥이나 벽의 일부를 빨간색으로 단장해서 고객들의 구매 심리를 은근히 자극하기도 한다. 이는 색채 마케팅 측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다.
백화점 매장은 아니지만 관광버스의 색깔이 빨간색 계통이 많은 건 놀러 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더 들뜨게 하기 위해서다. 관광버스의 외장을 착 가라앉은 회색 계통으로 했다간 북망산 가는 장의차로 오인 받기 쉽다.
아무튼 빨간색은 감각 신경 계통을 상당히 자극하고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색감을 주기에 빨간색에 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흥분을 잘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나 감정상의 장애가 있는 사람, 혈압이 높은 사람들에겐 빨간색이 그다지 유익한 색이 아니라는 게 색채 심리학자들의 통설이다.
우린 흔히 성질이 급하고 거센 사람을 ‘불같다’ 혹은 ‘불같은 성격’이라고 이른다. 불은 빨간색으로 그려진다. 그러니 불같은 성격에 빨간색을 갖다 대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므로 그런 성격의 사람은 빨간색을 피할 일이다.
불이 나왔으니 기왕 불 이야기를 더해보자.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빨간색이라 하면 불을 연상한다. 이건 어쩌면 불자동차의 색깔에서 연유했을지도. 물론 불을 연상할 때 빨간색이 떠올라서 그 색을 불자동차에 칠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다 보니 불과 관련된 것은 모두 빨간색 차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실제의 불은 순수한 빨간색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을 빨간색으로 인식한다. 예로부터 불의 강렬한 이미지에 불의 밝은 색 이미지가 혼합되어 그렇게 된 듯싶다.
동백꽃 또한 불만큼이나 우리에게 강렬한 느낌을 준다. 흔히 동백꽃은 처녀들의 입술보다도 더 붉은 것으로, 또 처녀들의 순정한 영혼으로 상징된다. 실제로 한겨울을 견디고 미처 새봄이 되기 전에 붉디붉은 색으로 피어나는 동백꽃은 피는 시기와 그 색깔이 한데 어울려 의지와 정열의 상징이 되었다.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의 원제가 『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이다. 항상 동백꽃을 들고 다니는 여주인공은 순수한 청년의 열정적인 사랑에 의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점은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백 아가씨’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든다. 동백꽃은 어쩌자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그 꽃이 더할 수 없이 빨갛게(멍이 들 정도로) 타오르다가 그만 ‘톡’ 하고 떨어져 버리는 성질 때문에 그랬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동백꽃은 결코 벚꽃처럼 무르익은 봄날에 피지도 않고 벚꽃처럼 꽃잎을 하나둘 날리면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동백꽃은 한겨울을 견디다 그 겨울 끝에, 때로는 눈을 뒤집어쓴 채 처절하리만치 핏빛으로 붉게 피어 있다가 어느 날 그만 꽃봉오리 전체가 꼭지째 떨어지고 만다. 동백꽃은 그런 꽃이다. 꽃잎이 하나둘 시드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안으로 삭이다가 그만 속으로 든 빨간 멍까지 한꺼번에 안고 미련 없이 지고 만다.
빨간 동백꽃의 마음은 그래서 여인의 한 맺힌 마음이다. 그러나 그 한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안으로 더할 수 없이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그만 송두리째 털어내 버리는 한이다. 그건 물론 온몸을 다 바치는 행위이다. 한 점 미련이나 머뭇거림이 없다. 그래서 동백꽃의 붉은 순정은 단심(丹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단심은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마음이니 어이 아니 붉을 수 있겠는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 하여 빨간 색을 뒤집어씌우면 사돈네 팔촌까지 패가망신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빨간 색을 자신들 무리의 상징 색으로 한 보수 정치 집단이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해당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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