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문읍도(開門挹盜)의 위기, 문을 열어놓고 도적을 부른다
[뉴스클레임]
진나라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춘추 5패, 전국 7웅 중 으뜸으로 평가받던 제나라를 제치고 진나라가 진격한 데는 무엇보다 제나라가 스스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제나라 몰락의 결정적인 이유는 인재 등용에 있었다.
제나라 마지막 왕 전건은 후승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그의 빈객들을 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나라에 쉽게 매수됐다. 이에 대해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전건은 나라를 잃고 공읍으로 유폐되어 굶어 죽었다’는 것이 11세기 북송 인물인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사마광은 이에 대해 한탄하면서,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어떻게 자신의 울타리를 철거하여 도적에게 아양(개문읍도, 開門挹盜)을 떨면서 ‘도적이 나를 사랑해서 공격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사리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제나라 마지막 왕 전건은 ‘개문읍도’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사마광은 지적했다. 개문읍도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삼국시대 3세기경으로 돌아가 보자.
중국 삼국시대, 손책은 자신의 동생인 손권에게 후사를 맡겼다. 당시 나이 겨우 15세인 손권은 당장 형 손책을 잃은 슬픔에 군정을 돌볼 겨를도 없이 비탄에 빠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손책의 가신인 장소가 손권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했다.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염없이 슬픔에만 잠겨 있으면 문을 열어놓고 도적을 청하는 격(개문읍도,開門挹盜)이 됩니다. 이러한 난세에는 욕심 많은 도적이 득실거립니다.”
그리고는 손권의 옷을 갈아입히고 말에 올라 밖으로 군대를 순시하도록 했다. 만약 장소의 진언에도 아랑곳하지 계속 감정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면 손책 사후 분열의 조짐이 보였던 손가(오나라) 세력은 모래성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이후 각성한 손권은 조조 유비와 함께 삼국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의 ‘사철손권전’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개문읍도는 긴박한 주위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감상이나 비탄에 빠져 저 스스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도적들은 당연히 나라의 근간을 훼손하는 간신들이다. 이는 작금의 인재 등용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시로 신문이나 방송뉴스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인사 등용 문제이다. 국회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조직의 장들 얘기로 시끌벅적하다.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저런 인물이 조직의 장이 될 수 있는단 말인가?’ 하는 한탄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국격에 한참 모자라는 인사들을 보면 낯부끄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급이 안되는 인물들이 나라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권투의 체급으로 비유하자면 헤비급 경기에 플라이급 선수를 내보내는 격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사문제가 조직의 흥망을 좌우했다. 인사는 이 시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억지로 앉히면 문제가 발생한다. 각종 잡음과 부정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그 여파로 조직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인사권자가 어떠한 조처를 취해도 영은 설 수가 없게 된다. 겉으로는 인사권자에 복종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실속 차리기에 바쁘다. 최근 불거져 터져 나온 대통령실 인물의 녹취파일에서도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당연히 인재 등용은 난맥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천하를 얻으려면 먼저 인재를 구하라’는 격언은 어느 시대이든 간에 통용되는 명제이다. 그러나 정작 인재를 구하려면 인재가 없다고들 한다. 그것은 조직에 필요한 인재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리더에게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는지, 그리고 인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주 문왕이 나중에 제나라 왕이 된 강태공을 섭외하는 과정을 이번 정부는 한 귀로만 듣고 흘려보내고 있다.
5천 년 역사의 중국에서 최고의 인재활용 경전으로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인 유소가 쓴 ‘인물지’를 꼽는다. 인물에 대한 연구나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 인물지이다. 인물지에는 인사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당시에도 인재채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리를 등용할 때는 절대로 경솔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군자를 쓰게 되면 수많은 군자가 이를 따라 몰려오지만, 소인배를 쓰게 되면 수많은 소인배가 달라붙는다.”
여기서 소인배와 군자를 가르는 기준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한마디로 군자는 공동체의 문제를 우선시하여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인 반면, 소인은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이해관계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다. 역사를 보면 나라가 흥할 때는 군자의 자질을 갖춘 참모들이 많았고, 나라가 망할 때는 주위에 소인 같은 간신배들이 설쳤다는 것을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할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명재상 관중도 천하의 패자가 되기 위한 인사 5원칙 중 첫 번째로 능력 있는 인재를 알아보라고 주창했다.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의 장은 능력 있는 군자를 알아보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인사 등용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