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법 회피·일탈회계로 30년간 유배당보험 계약자 권리 침해

[뉴스클레임]
35조원 규모 삼성전자 주식을 둘러싼 회계처리 논란은 더 이상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회계기준 도입과 금융 투명성 요구가 높아지는 현 시점에서, 지분법 회피와 일탈회계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138만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권익과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신뢰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본 기획은 10년 넘게 표류 중인 삼성생명법의 배경부터 위헌적 보험업감독규정의 실체, 그리고 2조8000억원 규모 계약자 권리 침해 구조까지 '실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팩트와 제도, 쟁점과 해법을 균형 있게 점검하고자 했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①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의 핵심 쟁점 분석
②삼성생명법 10년 표류, 위헌적 보험업감독규정이 원인
③138만 유배당보험 계약자 vs 삼성그룹, 2조8000억원 쟁탈전
삼성생명이 국제회계기준을 무시하고 특혜적 회계처리를 유지하며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의 권리를 30년 넘게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이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어떻게 풀 것인가' 긴급토론회에서 손혁 계명대 교수는 "삼성생명의 지분법 적용 회피와 IFRS 17 일탈회계는 유배당보험상품 계약자와 맺은 계약의 핵심인 초과이익 분배를 최대한 이연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 삼성화재 지분법 적용 회피 논란
삼성생명은 2025년 4월 삼성화재 자사주 소각으로 지분율이 15.43%로 상승해 보험업법상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여전히 지분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곽영민 울산대 교수는 토론문에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간 정책결정 참여, 중요거래, 경영진 교류, 필수 기술정보 제공 등이 확인된다"며 "K-IFRS 제1028호 문단 6의 유의적 영향력 판단 요소를 충족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금융일류화팀'의 존재와 홍원학·이문화 대표이사 간 교체, 모니모 공동운영, 블랙스톤 9300억원 공동투자 등이 유의적 영향력의 근거로 제시됐다.
삼성생명은 지분율 20% 미만인 5개 기업(코리아크레딧뷰로 2.80% 등)에 대해서는 지분법을 적용하면서 삼성화재에 대해서만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FVOCI) 금융자산으로 처리하고 있어 일관성 문제도 제기된다.
■ IFRS 17 일탈회계의 허구성
더 심각한 문제는 삼성생명이 2023년 IFRS 17 도입 이후에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기존 회계처리를 유지하는 일탈회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2025년 반기보고서에서 "유배당보험계약의 예상되는 장래 이익에 따른 계약자 배당 관련 보험부채금액을 기업회계기준서 제1117호의 요구사항에 따라 측정할 경우, 연결실체가 인식해야 하는 보험부채금액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전혀 없어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에게 지급할 배당금이 없다는 의미다. 손 교수는 "삼성생명이 IFRS 17에서 인식하는 보험부채가 없다는 것은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의사가 없으며 유배당계약자에게 시세차익을 제공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 30년간 이어진 계약자 권리 침해
문제의 출발점은 1990년대 초까지 삼성생명이 유배당보험상품으로 받은 5444억원으로 삼성전자 주식 8.51%(현재 약 35조원 가치)를 취득한 것이다.
김광중 변호사는 "유배당보험상품은 보험료는 더 내더라도 미래에 배당을 더 받게 되므로 이익이라며 홍보했지만 수십년째 제대로 배당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약 7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이 받았어야 할 배당금 중 일부에 해당한다.
2010년 유배당계약자 2802명이 제기한 배당금 지급 소송에서 법원은 "향후 장기투자자산이 처분돼 이익이 실현되면 계약자배당을 받을 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있다.
■ 일탈회계 전제조건 붕괴
일탈회계가 허용됐던 전제조건도 이미 무너졌다. 삼성생명은 2025년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으로 금산법상 10% 지분 한도를 맞추기 위해 일부 지분을 처분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처분계획 없음이라는 일탈 허용의 핵심 전제가 붕괴됐으므로 일탈회계의 지속 적용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며 "유배당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계열사 지분증권 평가이익은 별도 부채가 아니라 보험부채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율 공인회계사는 "일탈회계 도입은 불문에 부치더라도 일탈회계의 전제였던 삼성전자·삼성화재 등 주식을 매각함에 따라 기존 전제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새로운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생명이 국제회계기준의 재량권을 남용해 지분법과 일탈회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마지막 유배당보험 계약자가 사망하면 계약자지분조정은 부채에서 환입돼 삼성생명의 자본으로 전환되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