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청소년·장애여성, 의료 지원 한계에 여전히 배제
“WHO 지정 필수 의약품…저렴하고 차별 없는 보장 체계 시급”

23일 오전 서을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기자회견. 사진=장애여성공감
23일 오전 서을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기자회견. 사진=장애여성공감

[뉴스클레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유산유도제의 신속한 도입과 실질적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제도적 공백 속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이 여전히 불안과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호소였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는 23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에서 이들은 “유산유도제 도입은 단순한 약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자기결정권을 지키는 문제”라며 국정과제로 약속된 정책의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발언에 나선 서은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원은 “임신중지는 오롯이 본인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면서 “FDA 조사 결과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미페프리스톤 사용 누적 750만건 가운데 사망은 36건으로 출산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북미·유럽에서는 원격진료까지 허용된 상태인데, 한국은 여전히 정치적 이유로 지연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는 저렴하고 부담 없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의 증언들도 이어졌다. 낙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낙태죄 폐지 후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임신중지를 지원할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라며 “해바라기 수탁병원 30%가 시술조차 하지 않고, 일부는 신고와 고소를 필수로 요구해 피해자가 지원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WHO 필수 의약품인 유산유도제가 도입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더 큰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공혜원 활동가는 청소년과 이주민의 현실을 전했다. 

공혜원 활동가는 “주수, 보호자 동의, 비보험 진료 등 장벽 때문에 청소년은 부모 동의 없이 병원을 찾기 어렵고, 이주민·난민은 통번역조차 제공되지 않는다”며 “시간이 흘러 주수가 커지면 비용은 더 커지고 기회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산유도제 도입이 권리 보장의 시작”이라며 “조건부 도입이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게 이용할 국가 책임 체계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노동 현장에서의 문제도 제기됐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임신중절 수술비로 80만원 이상 쓴 이가 절반을 넘는다”며 “여성 노동자 다수가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인데, 수술이 월급 절반 이상 비용을 차지하는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유산유도제는 WHO가 지정한 필수의약품인데 정부는 단순 도입이 아니라 저렴하면서도 보장 가능한 방식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제74조 3항 단서조항을 삭제해 임신중지에도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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