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클레임]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연애야 연애!’ 백남준 선생은 뉴욕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전증으로 떠는 손을 허벅지에 누르며 한 말이다. 선생이 숨을 거둔 나이인 74세의 괴테는 열아홉의 처녀에게 청혼을 했다.
머리가 가슴을 머슴처럼 부리는 삶을 평생 살아왔던 괴테가 열병에 걸려 죽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뒤, 가슴이 반란을 일으켜 두번째의 사춘기를 맞아 일어난 일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괴테는 마리엔 온천으로 요양을 가서는 밤마다 여인들과 춤을 추었다.
‘음악은 접혀져 있던 그를 펼쳐 준다’는 말은 이때 괴테가 한 말이다. 괴테를 뻣뻣한 사람으로 알고 있던 지인들은 자정이 되도록 여인들과 춤을 추는 노인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게 생긴 나무가 마지막 꽃을 황급히 피우는 것을 독일어로는 Notblume (위기의 꽃)이라고 부른다.
젊은 베르테르처럼 사랑에 빠진 괴테는 일행중에 가장 나이 많고 지위가 높은 대공에게 처녀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유럽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현자 중의 현자로 알려진, 심지어는 ‘19세기의 명징한 정신’이라고도 추앙을 받는 괴테가 그렇게 조르는 걸 본 대공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50년전 함께 바람을 피우던 옛정을 생각해 결국은 중매를 서주었다.
74세의 노인과 19세 처녀의 결혼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괴테의 상당한 재산 때문이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괴테의 아들은 여태까지 딸처럼 대하던 처녀에게 청혼한 아비에게 분개했다. 그러나 아직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은 사랑을 스스로 포기하는 법이 없다’는 것은 역대 제왕들의 여자관계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청혼을 받은 울리케 폰 네베쪼프는 답변을 미루었고 그것이 뭘 뜻하는지 잘 아는 괴테는 바이마르로 향하는 마차에 흔들리며 참담한 고통을 담은 시 ‘마리엔 온천의 엘레지’를 썼다. 사랑의 아픔을 시에 담아 띄어 보낸 괴테는 60년간 써온 작품세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몰입하여, 여든 하나가 되는 해 자신의 대표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