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의혹보다 더 심각한 건 국민 안전 위협하는 제조 현실

[뉴스클레임]
최근 대웅제약(회장 윤재승)을 비롯해 제약업계를 향한 경찰의 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압수수색 장면. 하지만 정작 수사 결과는 어떨까? 대부분 무혐의나 기소유예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아니면 말고'식 수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원한관계와 경쟁사의 '무기'가 된 제보
제약업계에서 오래 취재해온 기자로서 목격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리베이트 의혹 제보의 상당수가 원한관계나 경쟁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매출 경쟁이 치열한 제약업계에서 경쟁업체의 발목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제보가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회사 전 직원이 경쟁사에 리베이트 관련 자료를 넘겼어요. 복수심 때문이었죠." 한 제약회사 임원의 토로다.
실제로 퇴사자나 해고자들이 보복 차원에서 제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런 제보를 바탕으로 한 압수수색이 과연 공정한 수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만으로도 '사형선고'
더 큰 문제는 압수수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순간 해당 기업이 입는 피해다. 아직 수사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마치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여론이 형성된다. 주가는 급락하고, 거래처는 발을 빼며, 임직원들은 위축된다.
"압수수색 보도 이후 3개월간 매출이 30% 줄었습니다. 결국 무혐의 처분받았지만 이미 회사는 휘청거렸죠." 한 중견 제약회사 대표의 하소연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압수수색 그 자체가 '처벌'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작 심각한 건 제조 현장의 '눈속임'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리베이트보다 훨씬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제조 과정의 불법행위들이다.
수년전 있었던 김포 소재 유산균 업체의 유통기한 지난 원료 보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통기한 위조, 불량품 재사용, 무허가 원료 사용 등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귀띔한다.
"제보만 없을 뿐이지, 현장에서 일어나는 눈속임은 상상 이상입니다. 원가 절감 압박에 못 이긴 일부 업체들이 안전을 담보로 장사하고 있어요." 한 제약업계 전문가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런 사안들은 내부 고발이 어려워 수사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사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물론 리베이트도 엄연한 불법이다. 의료진에게 금품을 제공해 특정 약물 처방을 유도하는 행위는 분명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사의 우선순위와 방법론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제보의 동기와 신뢰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제보가 들어왔다고 해서 무작정 압수수색부터 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일이다.
둘째,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제조 과정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리베이트로 인한 피해는 간접적이지만, 불량 의약품으로 인한 피해는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셋째, 압수수색 사실의 언론 공개 시점과 방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진짜 범죄는 따로 있다
제약업계의 진짜 문제는 골목 뒤편에 숨어있다. 화려한 압수수색 장면 뒤에 가려진 제조 현장의 불법행위들. 이것이야말로 수사기관이 집중해야 할 영역이다.
경찰과 검찰은 이제 '보여주기식' 수사에서 벗어나 진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를 찾아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리베이트 의혹 하나하나에 휘둘리기보다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수사기관의 역할이 아닐까.
무분별한 압수수색으로 건전한 기업까지 위축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대신 정말 위험한 곳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