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 정치사에서 노골적으로 재벌, 자본 사랑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양당체제 즉 수구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다. 한국 정당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이 두 세력이 분열하고 또 통합하는 역사다.
그 중심에는 두 가지가 핵심적으로 작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재벌(자본) 사랑과, 반공이다.
한국 정당 정치사라는 이 두꺼운 책을 좀 폭력적으로 간단하게 줄여보자.
4.19혁명, 5.18 민중항쟁, 6월 항쟁, 7~8월 노동자대투쟁, 91년 5월 투쟁, 97년 김영삼 정권 후기의 노동악법 철폐를 위한 총파업,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탄핵으로부터 구해주고 집권 열린우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문재인 정권을 등장시킨 촛불봉기 등 수많은 대중투쟁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수구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는 수구와 보수가 자리바꿈은 했을지언정 난공불락처럼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착취, 고통 받던 대중이 기존의 억압적, 파시스트적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봉기하면 민주당 세력(자유주의 보수 정치세력)은 일단 그 과정에 올라타 함께 걷다가, 자신들의 집권 가능성이 보이면 그 운동의 대상이 된(수구정치세력)과 타협하여 대중의 요구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생존해온 것이 민주당의 역사이고 정체성이다.
이런 민주당의 정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하기조차 한 정치역사의 궤적을 다시 복기하는 까닭은 지금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말하는 '적폐' 가 왜 청산되지 않고 재생산 되는지 보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다. 그들도 자신을 보수라도 말한다(양정철 - 민주당은 합리적 보수, 미통당은 수구, 이재명 대통령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매번 자신들을 '진보' 로, 수구세력을(국힘)을 '보수'로 부르거나 그렇게 불리는 것을 왜 즐기는 것일까?
첫째 자신들의 타협적인 정치 형태, 즉 적폐를 재생산시켜온 책임을 경감하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수구/ 파시스트는 타협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지만, 보수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 다른 하나는 바로 자신들을 진보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을 넘어서는 진보적인 정치세력, 또 그런 진보세력의 정치적 힘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뽑아내도 윤석열을 만들어낸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수많은 윤석열이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듯이, 극우 대중도 마찬가지다. 차별과 혐오,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는 극우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다. 극우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면 극우를 박멸시키려는 전략보다 사회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 정치와 사상의 지형에서 왼쪽의 공간을 더 확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채효정 / 12.3 이후에 마주친 교육과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중에서)
채효정의 말처럼 정치와 사상의 영역에서 왼쪽의 공간을 더 확대하는 것, 진보적인 정치세력과 그런 진보세력의 정치적 힘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민주당 정치에 묶어두려는 것, 이것이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제의 가장 악랄한 모습이 '위성정당'이었다.(내가 민주당을 국힘보다 더 큰 해악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민주당은 적폐의 피해자라기보다, 그 여부와 관계없이 수구 정치세력과 '환상의 콤비'를 이뤄 적폐를 증식시키는 적폐, 즉 '적폐 중의 적폐' 인 수구 -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를 재생산시켜온 주체라는 것이다. 즉 '국힘'이라는 보이는 적폐보다 보이지 않는 '민주당'이라는 장애물이 더 극복하기 힘들다. 하지만 '민주당'을 자신들이 외치는 '보수'의 자리로 돌려 놓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