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 장군의 할복에서 황국신민의 광풍까지

[뉴스클레임]
군국주의의 광풍은 하루아침에 불어닥친 것이 아니었다. 1912년 9월 천황이 죽었을 때 황태자의 스승이었을 만큼, 황실과 가까웠던 노기 마레스케 장군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노기는 그의 부인과 옷을 정갈하게 갈아입고 장검으로 부인을 죽인 후 자신도 할복을 했다.
노인이 자살을 한것은 개인적인 비극 때문이었다. 그 비극은 일본사회에 불어닥친 군국주의 광풍에 휩쓸려 일어난 것이었다. 무사 집안에서 태어난 노기는 러일전쟁에 참여하여 여순전투를 지휘했지만, 그 전투는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비참했다. 두 아들을 전투 중에 잃었을 뿐 아니라, 러군의 요새를 착검돌격하는 식의 무모한 작전으로 수수많은 젊은이들을 그는 죽였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였다. 어떤 희생을 치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은 결국 승리했으며 마레스케는 그 덕분에 전쟁영웅이 되었다. 학살자라는 욕을 먹으며 우울증에 걸린 장군에게 천황은 자결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살을 할 자유조차 뺏긴 노기어린 노인이 천황이 죽은 뒤에 자살을 하자 군국주의자들은 그를 국민영웅에서, 전쟁의 신으로 추앙을 했다.
황국신민들은 군국주의자들이 떠먹여주는 대로 착하게 받아먹었다. 다이쇼 민주주의 체제에 어정쩡하게 도입되었던 민주 법치 인권 자유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말끔히 제거되었고 효율적인 전쟁기계가 되어갔다. 인류사에 유례없던 자살공격비행단같은 광풍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광풍이 다시는 불 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