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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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촌지(寸志)’는 글자 그대로 ‘작은 정성’이다.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다. 국어사전은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 즉 촌의(寸意), 촌정(寸情)으로 흔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을 이른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은 ‘촌지’를 ‘촌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낑’이라는 ‘정체불명의 은어’로 표현했다.

기자들은 그 ‘낑’을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받으러 다녔다. 이를 ‘슈킹’, 또는 ‘콜’이라고 했다.

슈킹은 '돈을 거둬서 모은다'는 ‘슈킨(集金)’이라는 일본어였고, 콜은 아마도 영어의 ‘call’이었다.

촌지도, 촌지를 받아 챙기는 것도 모두 은어였다. 은어를 사용한 이유는 스스로도 쑥스럽고 부끄러운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낑의 특징은 모두 ‘빳빳한 지폐’라는 점이었다. ‘신권’이었다. ‘수표’를 챙기기도 했다. 수표 역시 갓 발행된 ‘빳빳한 수표’였다. ‘헌수표’라는 것은 없었다.

'달러‘를 낑으로 받을 때도 있었다. 그 달러 역시 ’빳빳했다‘. 구겨진 달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기자들은 그 빳빳한 낑을 기발한 방법으로 나눠가졌다. 낑을 분배하면서 서투른 솜씨로 한 장, 두 장 세지도 않은 것이다.

100만 원을 기자 10명이 분배한다고 하자. 은행에서 갓 인출한 빳빳한 만 원짜리 돈뭉치에는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그 번호에 따라 1부터 10까지 뚝 자르면 10만 원이다. 그런 식이었다.

낑은 성행했다. 기업들은 출입기자들에게 낑을 1년에도 여러 차례나 지급(?)했다. 명절이나 여름휴가 때가 되면 낑이었다. 기업에게 무슨 ‘현안’이 있을 때도 낑이었다.

기자들은 지방출장을 간다며 낑, 해외출장을 간다며 ‘달러 낑’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는 낑을 단속해야 바람직할 경찰도 낑이었다.

‘가장 높은’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에는 ‘6·29 봉투’라는 이름의 낑이 있었다. 노태우 정권을 탄생하게 한 ‘6·29 선언’을 기념하는 낑이었다. ‘금색 봉황이 새겨진 노란 대봉투’에 들어 있는 낑이었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빳빳한 신권이 몇 다발씩 들어 있었다. 정부부처의 낑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더 많을 정도로 단위가 컸다고 한다. 그 봉투의 명분은 희한하게도 ‘품위유지비’라고 했다. 청와대라는 ‘높은 관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품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출입기자들의 생일을 챙겨주기도 했다. 기자들의 생일이 되면 ‘3단으로 된 하얀색 고급 케이크’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봉황’이 새겨진 상자에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낑은 종류가 다양했다. ‘현찰’이 아닌 ‘현물’도 있었다. 값비싼 양주나 명품 등을 선물하는 것이다. 상품권이나 교환권도 있었다. 주식이 낑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해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른바 ‘패스 21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기자들이 마신 술값을 대신 내주는 ‘대납 낑’, 또는 ‘술값 낑’도 있다. 골프도 빠질 수 없다. ‘골프 접대’를 하면서 ‘봉투’를 찔러주고, 끝난 뒤에는 거나하게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라졌어야 할 이 부끄러운 ‘과거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언론에 뿌렸다는 돈이다. 언론은 ‘기레기’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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