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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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조선 때 선비 김창업(金昌業)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있었다.

수십 층 돌층계를 오르니 그 위에 정자가 있다. 장성의 끝머리다. 밑을 보니 파도가 철썩댔고, 남쪽을 보니 물과 하늘이 맞붙었는데 한 점의 섬도 없다. 이 바다가 바로 발해(渤海). 북쪽은 산봉이 겹겹이 솟아 있으며 그 밖은 모두 사막으로, 그 아득하고 신비함은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이곳저곳에 낙서가 많았다. 그 가운데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키는 열 길이라고 들었더니(嘗聞詩人長十丈)/ 오늘에야 비로소 열 길인 줄 알았도다(始知今日長十丈)/ 시인의 키가 열 길이 아니라면(若非詩人長十丈)/ 어떻게 이 벽에다 ×칠을 했을까(何綠放屎此壁上).”

만리장성에 적혀 있는 낙서 글‘×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巡狩碑)라는 사실을 밝혀낸 금석학자다.

이 비석은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를 물색할 때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은 것이다.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영토를 넓히면서 고구려와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1816년 김정희는 비석의 측면에 이렇게 새겨넣었다.

이 비석은 신라 진흥왕 순수비다. 병자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다(此新羅眞興王巡狩之碑 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자신과 함께 친구 김경연(金敬淵)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다.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다른 관점으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한 셈일 수도 있을 듯했다.

경복궁 담을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피의자17세 소년과 16세 소녀라고 했다. “돈을 주겠다고 해서 저질렀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모방범행을 한 20대 청년은 예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문화재 훼손 범죄는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합천 해인사의 대적광전 등 주요 전각의 벽에 낙서를 한 40대 여성이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는 이교도의 기도주문으로 보이는 한문을 검은색 사인펜으로 적었다는 당시 보도다. 이 여성은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범행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얘기다.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이 이퇴계의 도산장(陶山場)과 가까운 청량산(淸凉山)의 어떤 암자에 들었는데, 낙서가 가득했다. 기둥과 벽 등이 온통 낙서로 메워져 있었다. 방문객들이 자신의 이름 등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낙서 위에 낙서가 덧칠되어 있었다.

유독 한 군데에만 낙서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사방 한 자쯤 되는 나무로 덮여 있었다.

이익과 동행했던 사람이 그 나무로 덮인 자리에 글을 쓰려고 붓을 뽑아 들자, 암자 측에서 급히 저지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이퇴계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적어놓은 곳이기 때문에 나무로 덮어 보존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방법을 거꾸로 이용하면 어떨까 싶어지고 있다. 낙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는 것이다. 그러면 귀중한 문화재의 훼손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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