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역 7번 출구에서

[뉴스클레임]
“지겨운 일상이 최고지!"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 같은 내일이 여지없이 삶을 파고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일상에서 열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게으름이 덮쳐왔다. 그리고 곧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했다. 나의 영혼은 좌초했고, 나는 스스로 무너졌다.
“내 처지에 무슨 놈의 열정을….”
마음의 짐을 더는 데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물론 열정 없이 살다가는 앞으로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래역 7번 출구 2시 반.‘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고 지하철을 탔다. 언제 약속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숙소인 우이동 골짜기를 벗어나 본 지도 오래전의 일이다. 예전에 문래동 골목길을 헤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문래동이 뜨고 있다는 소문이 막 돌고 있을 때였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나에게도 거칠지만 날 것에 대한 애정, 꿈에 대한 열정이 오롯이 살아있었다.
“언제 한번 만나지.”
애당초 만날 생각이 없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이득이 조금이라도 걸리면 사람들은 이성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고, 속이려 드는데 신물이 났다. 작은 것까지도 하나하나 계산기를 돌리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화통화를 하기는 가끔 하지만 사람 만나는 데 지쳤다. 모든 게 피곤했다.
’언제‘라는 단어는 나의 삶에는 없었다. 언제는 거부와 부정의 언어였다. 삶에 민감한 나로서는 그것은 죽은자들이 쓰는 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 입에서 언제라는 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문래역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역사 안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7번 출구 역 밖으로 나갔다. 역사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사람을 기다려 본 기억이 언제였을까? 기억은 20대 대학 시절로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낭만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청춘 시절을 나의 마속에서 명확히 끄집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난 시절의 장면을 안개처럼 뿌옇게 처리하는 비열한 기술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낡아빠진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것이 없었다면 내 삶은 처참했을 것이다.
지난날의 삶의 실체를 하나하나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쉬운 길을, 다시 말하자면 비겁한 자의 특징인 회피를 선택했다. 과거를 덮어버리는, 그러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허무한 무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제는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깊이 걸어들어왔다.
상념을 깬 것은 귀퉁이를 돌아 달려오고 있는 송기연 작가였다. 그녀의 키가 작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전에도 그 왜소한 어깨에 무거운 사진기를 매고 다녔을 텐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가 근처의 커피숍을 얘기하자, 그녀는 갈 곳이 있다며 내 손을 이끌었다. 문래동 골목길에 들어섰다. 골목길을 몇 번 돌아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그러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법한 카페였다. 공장을 연상케 하는 날 선 그대로의 외벽이 먼저 눈에 띄었다. 카페 안으로는 옛날 기와집마냥 마당도 있었고, 마당에는 조그만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낡은 판자때기와 세월을 머금은 우중충한 시멘트가 발라진 마당 주변으로 오후의 태양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허황된 광경에 잠시 넋을 잃은 나는 순간적으로 화초 위를 춤추고 있는 나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녀가 불쑥 말했다.
“공장터 였던 이곳은 문래동 카페 중 사진 핫플레이스이지요.”
송 작가에게 전화를 건 것은 최정원 실장과 얘기를 나눌 때였다. 우이동 이웃에 사는 최 실장은 최근에 만나는 유일한 지인이다. 출판사 근무 시절, 그는 사진과 글을 편집한 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든 유능한 경험이 여럿 있다. 최근에도 사진과 글을 염두에 둔 책을 기획 집필 중이었다. 그가 사진 얘기를 꺼내자, 뜬금없이 떠오른 것이 송 작가였다. 뜬금없다는 말은 송 작가와 마지막 만난 지 10여 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송 작가는 내가 종종 들르던 거래처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다. 행사 때마다 커다란 사진기를 메고 다녔다. 나는 그녀가 자기 일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이 주어지면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다. 일이 고되냐고 물으면 그녀는 씩씩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의 내게는 서먹한 언어인 책임을 들먹거렸다.
“고되기는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제 일이잖아요.”
그녀가 일하는 재미에 빠졌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돌연 그녀가 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으로 그녀가 인도 인물 사진 책을 비롯, 총 3권의 사진 책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내가 한마디 물으면, 그녀는 열 마디로 대답했다. 나는 거의 말 없이 그녀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듣기만 했다. 만남의 예정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쉽게 그녀의 얘기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힘이 부치는지 가끔 호흡을 고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내는 그녀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
“40살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나의 영혼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거든요. 그리고는 곧바로 인도로 떠났습니다.”
자신은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 무거웠다. 다리가 성치 않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그녀로서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상당한 위기이자 모험이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그녀는 힘들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을 선택했다.
“삶은 의미의 문제지요. 한시라도 의미 없는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말하는 도중 그녀의 눈이 순간순간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이 내게는 슬픔으로 읽혀졌다. 혹시나 하고 얘기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잘못 보았을까, 다시 보았지만 역시 눈물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간간이 떨리게 들려왔다.
담담하게 자신의 세월을 풀어가는 그 눈빛에는 세월의 날 선 고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주어진 것 하나 없는 그녀가 꿈을 좇아갈 때의 현실적인 생활의 고통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온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빌어먹을! 나는 그녀의 세월에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감정이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도에서 돌아온 직후 정착한 문래동 10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그녀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어디로 갈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떠나기 전 문래동 10년의 세월을 찍은 사진 책을 작업 중이다. 40살이 되기 직전에 인도로 향했던 그녀는 이제 50줄에 들어선다.
“또 다른 낯선 곳으로 가야지요. 아마 문래동처럼 과거와 현재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그곳에서 나의 소중한 시간, 열정의 시간을 불태워야지요.”
그녀는 충분한 삶을 살았다. 그 말인즉슨 상상하는 대로 삶을 펼쳤다는 말이다. 상상의 삶은 이야기의 보고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다양한 것은 직접 삶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름다움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목숨을 걸고 삶을 경험하지 않는 자는 삶의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다.
카페를 떠날 때도 태양은 여전히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다만 한낮의 왕성한 햇빛이 아니라 다소 허약한 빛을 골목 모서리를 내비치고 있었다. 손바닥을 펴보았다. 부서진 햇살이 손바닥 사이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직접적인 경험을 풀어낸 이야기들의 조각들이었다. 한조각 한조각 햇살마다 나는 나지막하게 간청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신음이었다.
“제발 나를 데려가 달라고!
현실에서 도망칠 곳이 없단 말이야!”
문래동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근래 벌어진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내 마음에 경고등이 켜졌다. 그동안 삶이 종종 질문을 던져와도 나는 그것을 곧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하게 안다. 또다시 삶이 내게 질문을 던져온 것이다.
“내게는 없고 그녀에게는 있다.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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