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자의 소나타

[뉴스클레임]
발신자표시제한 전화가 걸려왔다. 힐끗 시계를 보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새벽 1시 15분, 조금 생소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혹시나 해서 ‘누구냐’고 연이어 물었지만, 상대는 자신의 이야기만을 되풀이했다. 나를 원망하는 말뿐이었다.
“왜 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거야?”
잠이 확 달아났다. 단조로운 일상에 침입자가 불시에 등장했다.
‘세상에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모두들 잠든 한밤중에 아직도 누군가가 나를 찾았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밤중에 깨어나서 벽면을 바라보는 것은 늘 상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새벽녘까지 항상 깨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가에 기댄 채 간혹 꾸벅꾸벅 졸다가 호들갑스럽게 놀라서 깬 적도 더러 있다. 그런 날도 어김없이 창가에 어리는 햇살 줄기를 손에 잡히기 전까지는 결코 깊은 잠에 빠지지는 않았다. 즉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멍 때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TV는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낮 동안에는 즐겨보던 유튜브도 한밤중인 시간대에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 벽만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생각마저 경직된 채 석고상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따름이다.
한밤중에 사람들과 전화하기를 좋아했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전화통화시간은 내가 살아 있다는 방증이었다. 모두 잠든 한밤중, 통화 상대와의 거리가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와 하나 된 분신과 교류를 한다고 믿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같이 한밤중 전화가 뚝 끊겼다. 내 전화통화를 받아줄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 황당한 사살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한밤중 전화통화가 끊기면서, 나는 전격적으로 고립되었다. 고립은 갇혀 있는 것이다. 갇혀 있는 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절은 그 누구와도 그리고 그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외로움의 특성과 같다. 외로움은 고립 상태이자, 마음의 상태이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렬한 자에게 특히 외로움이 짙게 깃든다.
관계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이다.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관계는 도탑고, 그 거리가 멀어지면 관계가 사라진다. 사람들이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히 외롭고 또 두렵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고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씩씩하게 반문했다.
“내가 외로울 리 있겠어!”
역설적으로 그런 자문자답은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나를 사정없이 질책하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분노의 추악한 얼굴이 거울에 비춰진다. 분노란 욕구가 좌절될 때 나타나는 충동적 반응이다. 분노의 얼굴은 관계가 사라진 외로운 얼굴일 뿐이다.
한때는 목표가 같은 사람끼리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내가 다가갈수록 상대는 멀찍이 도망갔다. 덩달아 그들과 함께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관계는 신기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목표와 관계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목표가 오히려 관계를 갈라놓는다. 목표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욕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욕구에 바탕을 둔 관계가 싫다. 그럴 바에 차라리 사람과의 관계를 거부하겠다.
반년 전, 우이동 골짜기에 밀려든 이래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한낮에 사람을 만나러 시내를 나가본 적이 거의 없다. 간혹 지인들의 메시지가 뜨지만 이를 무시한 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그런데 오늘 새벽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 비록 발신자표시제한 전화였지만 한밤중의 전화는 오랜만의 일이다. 더구나 어떤 의도도 없이 나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전화통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오늘만큼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 즉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또다시 떠오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부터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먼동이 서서히 밝아오면 나는 어느 순간 수면제를 먹은 사람처럼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오늘만큼은 분노와 욕구가 사라진 침묵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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