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자를 위한 변명

사진=정보철 편집위원
사진=정보철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영화 ‘기생충’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극 중 인물인 배우 송강호에게 내가 겹쳐 보여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갈등에 시달려야만 했다. 결국, 상영 중인 영화 중간에 극장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밖에 나오자 한낮의 태양이 정면으로 나를 들이받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햇살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골목을 서둘러 찾아 들어갔다. 골목이라, 그러고 보니 골목은 이전에도 운명에 깊이 관여한 적이 있었다.

통금이 있던 시기, 겨울날 한밤중에 내가 찾아든 곳은 골목 안에 놓여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다만 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다. 숙소인 독서실 건물 1층 출입구는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여관이나 파출소를 찾아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나는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 

통금시간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숙소 문이 열리는 새벽 시각, 골목 안을 빠져나오면서 힐끗 돌아본 것은 쓰레기통이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이라 여겼던 것은 골목에 장치한 커다란 쓰레기통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술집에서 벌어진 그 황당한 일을 아직도 기억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쓰레기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가여운 모습을…. 더구나 그날은 새해를 코앞에 둔 날이었다. 

내가 운명에 반기를 든 것은 기껏해야 술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도시 골목 곳곳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등장하는 주정뱅이처럼 나의 영혼은 항상 불투명했고, 그리고 또한 우울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어설픈 환경을 배경으로 어설픈 재능을 갖고 있는 평범한 자의 한계였다.

한계는 차라리 벽이었다. 턱없이 견고하고 높은 벽이었다. 주어진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 벽을 무너뜨릴 수도, 허물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현실에 순응하는 것뿐이다. 사회의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생각들로 차 있는 사람’인 것이다.
 
평범한 자의 한계는 삶의 도처에 깔려있다. 한계를 오히려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평범한 자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예란 어떤 순간이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노예의 안전에는 두려움과 쾌락이라는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노예에게 주어지는 것은 초라함이다. 삶이 초라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으로 꽉 얽매여 있다. 그런 것들이 마음을 왜소하게 만든다. 왜소한 마음은 거지이다.
거지는 한가지 낱말밖에 알지 못한다. 

”더 많이, 더 많이….“

거지는 어디를 가든 더 많은 것을 취하려 한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는 탐욕으로 들끓고 있다. 그것은 고치기 힘든 질병이다. ‘사탕 덫에 걸린 원숭이 병’이다.
아프리카 주민들은 원숭이를 잡는 방법으로 목이 잘록한 병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탕 든 병을 길목에 놓아두면 원숭이는 병에다 손을 넣어 사탕을 움켜쥔다. 그러나 사탕 항아리 목이 잘록해서 손을 빼낼 수가 없다. 원숭이는 손을 빼려면 사탕을 놓아야 하지만 사탕 욕심에 매달린 원숭이는 사탕을 쥔 손을 뺄 수가 없다. 사탕 항아리 얘기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의 탐욕을 경고하고 있다. 삶의 경험상,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탕을 손에 쥔 원숭이처럼 삶에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무엇이든 손에 넣고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런 마음에는 근심,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것은 차라리 공포이다. 공포가 정신을 옥죄는 것이다. 때로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심해 공포증이 나를 질식시키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축 늘어져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그것은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삶을 낭비하는 자, 나는 기생충과 다를 바 없었다.

기생충, 내가 영화를 보다가 현타가 와서 도중에 극장 문을 나섰다. 그리고 도망치듯 찾아든 것은 하필이면 어두운 골목이었다. 그해 12월의 술집 골목으로 순식간에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그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술집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진정으로 그 골목에서 나와야 한다. 평범한 마음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 골목을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마음은 탐욕가이자 조바심내는 거지이다.
탐욕과 조바심을 타파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거지처럼 수없이 승리를 구걸하지 않고, 한 번만의 승부를 겨뤄야 한다. 한 번의 승리에는 무궁한 스토리가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오기에게서 그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중국 전국시절 장군 오기는 76번을 싸워 모조리 이겼다. 그런 그가 대단히 역설적인 말을 남겼다. 
 
“단 한 번 승리한 자는 황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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