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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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레임]  우리는 짜장면을 비빌 때 고춧가루를 한 숫가락만큼 섞는다. 그래야 짜장면의 느끼한 맛이 '중화'되기 때문이다. 입이 개운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풋고추를 시뻘건 고추장에 찍어서 먹기도 한다. 고추장에는 매운맛뿐 아니라 단맛과 짠맛도 녹아 있다. 매운맛은 식욕을 자극하고 소화를 도와주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물론 고춧가루가 '엄청' 매우면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고추는 '알맞게' 맵다. 매운 성분이 원산지인 멕시코 칠리고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고춧가루를 듬뿍 섞는 음식은 더 있다. 잘 알다시피 김치다. 

우리가 고춧가루 범벅 김치를 먹게 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고추는 왜란 때 우리에게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추의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고추를 ‘왜나라에서 온 매운 나물’이라는 뜻으로 ‘왜개자(倭芥子)’라고 불렀다. ‘'번초(蕃椒)’, ‘당초(唐椒)’라고도 했다.

고추는 '신무기'로 등장했었다. ‘끔찍하게 매운 맛’에 기겁한 알본이 고춧가루를 전쟁에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들은 조선군과 전투를 할 때 고춧가루를 뿌려서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그 틈을 노려서 칼을 휘둘렀다.

조선군이 성을 지키며 농성을 할 때는 고춧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조선군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면 성벽을 기어올랐다. 그랬으니 고춧가루는 일종의 ‘화학무기’였다.

이 일본군의 '고춧가루 전술'을 우리가 써먹은 적도 있다. ‘이괄의 난’ 때 진압군이 고춧가루를 바람에 날려 반란군의 눈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무기’로 등장한 고춧가루를 ‘음식’으로 바꾸는 재간이 있었다. 조선 사람들을 말살시키겠다던 고추를 되레 먹거리로 삼은 것이다. 

일본은 그 '살인 고춧가루'를 먹는 노하우가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의 농업 관계자들은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매운 고추'를 먹을 수 있게 되었는지 연구했다. 

이를 위해 일본에서 생산된 고추의 씨를 조선에 심어봤다. 그랬더니 적당히 맵고 맛좋은 고추가 열리고 있었다. 반대로 그 알맞게 매운 조선의 고추씨를 일본 땅에 뿌려봤지만 엄청나게 매운 고추가 열리는 바람에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도 있다. 귤나무가 회수 남쪽에 있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얘기다. 우리 토질이 고추 농사에는 '짱'이었던 것이다.

맛이 독한 청양고추도 있지만, 우리 땅에서 생산된 고추는 이처럼 먹을 만한 고추였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 땅의 풍부한 채소와 결합시켜 ‘김치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김치는 이미 1700년대 초에 중국에 소개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김치는 벌써부터 ‘한류’를 유행시킬 가능성이 높은 식품이었다. 오늘날 김치는 '지구촌의 음식'으로 떠올랐다.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특히 정치판이 싸움질 좀 그치고 김치를 찾아야 좋을 날이다. 우리를 전멸시키겠다는 '화학무기'마저 끌어당긴 '포용력'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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