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레임]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암소의 혀가 핥고 지나간 적 있던 내 손등 위에 속삭이는 말처럼 은밀하면서 간지러운 것들이 돋아났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외양간으로 가서 얼어붙은 두엄을 밖으로 치웠다. 술기운이 잦아들면서 차가워졌던 몸이 달아올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소를 팔았지만 우리집은 여전히 가난했다. 내게 그 소가 대학 등록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주무신다. 어머니는 맑은 물로 무쇠솥을 부시어내고 주인을 잃은 외양간으로는 사방에서 사나운 시선 같은 찬바람이 몰아친다. 쇠스랑을 쥘 자격이 없는 손아귀 가득 더운 땀이 배어난다.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그래, 소설이라는 걸 쓸 테냐. 아버지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래도 소설이라는 걸 쓸 테냐. 나는 고개를 저었는데 무엇을 부정하는 거였는 지는 아버지 역시 확신할 수 없었으리라. 쓰고 말고 할 게 있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으나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제기랄, 소설은 이미 저 소가 다 써버린걸요. 세상이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비장하게 희극적인 삶을 삭제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문학은 소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22쪽

'문학은 마지막 희망이다. 문학이 무너지면 세계도 무너진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비슷해보이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만이 문학이다. 소설과 비슷해보이는 것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만이 소설이다. 소설을 규정할 수 없는데 소설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무도 소설을 규정할 수 없지만, 누구나 그게 소설임을 알아본다. 아, 이게 바로 소설이구나, 하며 나지막히 감탄하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강진모 편집위원
강진모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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